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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농산악(先農山岳) 2006


  ■ [회계장부] 수입 지출 현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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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도 산행 예정지의 개략도및 지도 입니다. <click 하면 원본 볼 수 있슴) 1. 도봉산 시산제(2월) 2. 입암산(3월) 3. 사량도 지리산(4월) 4. 북바위산(5월) 5. 천태산(6월) 6. 금원산(7월) 7. 각흘산(8월) 8. 가리산(9월) 9. 설매재(10월) 10. 금오산(11월) 2,012 원   
   2002년 산림청에서 \"2002 세계 산의 해\"를 기념하고 산의 가치와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기 위하여 \"산의날\" 및 \"100대 명산\"을 선정 공표하였습니다. 100대명산은 지리·생태학 관련 교수 및 산악관련 전문가 등 13명으로 선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선정한 것입니다. 이중 운장산이 포함되어 있는데 월간산에서 제작한 등산지도를 첨부합니다. . 원   
  

히말라야 8,000m급 14좌 소개

 

 

에베레스트 (Everest)
  높 이 : 8,848m
위 치 : 네팔과 중국 국경, 쿰부 히말라야
경, 위도 : 27/59N, 86/56E


네팔명은 \'사가르마타\', 중국명은 \'초모랑마\'로 불리우며 에베레스트란 이름은 발견자인 영국의 조지 에베레스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초등은 1953년 영국의 존 헌트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인)와 셰르파 노르게이 텐징에 의해 이루어 졌
다. 세계 최고봉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고 고상돈 산악인이 1977년 처음 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케이 투 (K-2)
  높 이 : 8,611m
위 치 : 파키스탄 카라코람 발토르 산군
경, 위도 : 27/59N, 86/56E


K2는 히말라야의 8,000m급 봉우리 중 가장 아름다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등반 성공률이 50% 정도로 지극히 낮아서 가장 오르기 어려운 8,000m봉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현지에서 부르는 K2의 이름은 \'초고리\'이다. 초등은 1954년 A. 데지오가 이끄는 이탈리아 원정
대가 7월 31일 아브루찌 릉을 통하여 시도를 해서 L. 라체델리와 A. 콤파뇨니가 초등을 이룩했다. 1977년에는 일본이 42명의 등반가를 동원하여 정상등정에 성공하였으며 우리나라는 1986년 김병준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아부루찌 릉을 통해 정상에 올랐다.
 
 칸첸중가 (Kangchenjunga)
  높 이 : 8,586m
위 치 : 네팔 히말라야 동부 칸첸중가 산군
경, 위도 : 27/42N, 88/09E


칸첸중가는 8,586m로 세계 3위의 고봉으로 티벳어로 \'5개의 큰 눈의 보고\'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네팔인들에게는 최고의 성역으로 간주되는 산이다. 따라서 현지인들은 꼭대기에 올라서는 것을 극히 꺼린다고 한다. 주봉은 1955년 찰스 에반스가 이끄는 영국 원정대에 의해
서 초등이 되었는데 등정자인 조지 밴드와 브라운은 성역을 밟지 말아달라는 현지인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정상을 몇 걸음 앞둔 지점에서 등반을 멈추었다. 성역으로 간주되는 칸첸중가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은 영국 원정대의 이같은 신사적인 행동은 알피니즘의 구현으로 히말라야 등반사의 한장을 장식하며 등반대의 성가를 더욱 드높였다. 한국에서는 87-88 동계 칸첸중가 원 정대(부산 대륙산악회)가 캐러번 도중 대원 1명이 사망하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등정에 성공하였다.
 
 로 체 (Lhotse)
  높 이 : 8,516m
위 치 : 네팔 히말라야 쿰부 산군의 중북부
경, 위도 : 27/58N, 86/56E


로체는 에베레스트의 위성봉으로 인식이 되어서인지 다른 8,000미터 봉에 비해 등반이 자주 이뤄지지는 않으나 성공률이 매우 낮은 험준한 봉우리이다. 초등은 1956년 에글러가 지휘하는 스위스 원정대에 의해 5월 18일 이루어 졌는데 루이징거와 라이스가 서벽을 경유해서 정상에
도달했다. 현재 히말라야의 고봉의 벽중에서 가장 등반이 어려운 곳의 하나로 로체 남벽이 꼽히는데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8000미터급 14봉을 모두 오른 폴란드의 예지 쿠크츠카도 이곳 로체 남벽을 오르던 중 추락사했다. 로체는 에베레스트와 인접한 관계로 로체봉 단독 등반보다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연결하는 종주등반으로 등정이 시도되는 경우가 많다.
 
 마칼루 (Makalu)
  높 이 : 8,463m
위 치 : 네팔과 중국 국경, 쿰부 산군 동부
경, 위도 : 27/53N, 87/05E


마칼루는 그 모양으로 인해 \'검은귀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마칼루팽이라고도 불리운다. 네팔 히말라야에 위치한 마칼루는 오래전부터 여러 원정대가 관찰과 촬영을 거듭했으나 195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등반이 시도되었다. 처음 등정을 시도한 미국 원정대(원정대장
시리)는 7,056미터지점에서 후퇴하였고, 다시 몬 순기에 프랑코의 프랑스 원정대가 북릉으로 7,880미터 지점까지 도달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1955년 봄 다시 J. 프랑코는 9명의 전대원을 3개팀으로 나뉘어 5월 15, 16, 17일에 아무런 사고 없이 연속으로 정상에 도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982년 가을 한국산악회의 허영호씨가 단독으로 등정에 성공했다.
 
 초오유 (Cho Oyu)
  높 이 : 8,201m
위 치 : 네팔 쿰부 지역과 티베트 자치구
          경계, 쿰부 산군의 서부
경, 위도 : 28/06N, 86/40E


초오유는 \'여신이 거처하는 곳\'이란 이름을 가진 우아한 산이다. 네팔쪽의 남면은 상당한 급경사에 장장 2km에 달하는 넓고 긴 벽을 형성하고 있으며 북면은 비교적 완만한 사면으로 형성 되었다. 1954년 오스트리아의 티치가 이
이끄는 등반대에 의해 초등이 이루어졌다. 당시 이들은 네팔과 티벳간의 교역로이자 남체 바잘에서 가까운 난파라(Nanpa La, 5716m)를 넘어 북서릉을 통해 무산소 등정에 성공했다.
 
 다울라기리 1 (Dhaulagiri 1)
  높 이 : 8,167m
위 치 : 네팔 중부, 다울라기리 산군 최고봉
경, 위도 : 28/42N, 83/20E


1949년 최초의 항공사진 촬영 이후 1950년에서 1959년 사이에 프랑스, 스위스, 아르헨티나, 오스트리아가 교대로 일곱 번에 걸쳐 원정을 했으나 모두 8,000미터선 아래서 실패했다. 1960년에는 막스 아이젤린이 조직한 스위스 원정대 가 북동릉을 경유하여 5월 13일에 초등에 성공
했다. 다울라기리는 잦은 악천후에 따른 급격한 기후 변화로 위험한 산으로 악명이 높은데, 특히 남벽은 1977년 라인홀트 메스너의 실패 이후 아직도 미답봉으로 남아 있는 극도로 위험한 벽으로 등반인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 에서는 1988년 부산합동대에 의해 가을에 등정에 성공하였다.
 
 마나슬루 (Manaslu)
  높 이 : 8,163m
위 치 : 네팔중부,마나슬루 히말라야 주봉
경, 위도 : 28/33N, 84/34E


마나슬루는 1950년-55년 사이에 영국 원정대가 이산을 최초로 정찰한 후 일본 원정대가 4회에 걸쳐 등반 루트를 찾아냈다. 1956년 5월 9일 마키대장이 이끄는 일본 원정대의 이마니시와 셰르파 걀첸 노르부가 정상등정에 성공했다. 마나슬루는 한국 산악인에게는 비극의 산으로 인
식되어 있다. 1972년에 김정섭 대장이 이 끄는 한국 원정대가 노말 루트로 등반을 하던중, 6,950미터 지점에서 눈사태로 4명의 한국대원과 1명의 일본인, 그리고 10명의 셰르파가 사망하는 히말라야 등반 사상 최악의 사고를 맞았다. 이후 1976년 봄 대한산악연맹이 등정을 시도했으나 다시 실패하고, 1980년 봄에 이르러서야 동국대 산악회에 의해 세계에서 8번째로 등정에 성공했다.
 
 낭가 파르밧 (Nang Parbat)
  높 이 : 8,125m
위 치 : 파키스탄, 펀잡 히말라야
경, 위도 : 35/14N, 74/35E


\"산중의 왕\" 으로 불리는 낭가파르밧은 히말라야산맥의 8,000m 이상 고봉중 가장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지리적으로 다른 거봉들과 떨어져 있어 정상 부위의 바 람과 눈보라는 다른 어떤 봉우리보다도 강하다. 낭가파르밧의 대표적인 벽은 디아미르벽과 루팔벽으로 나눠져 있으
며 세계최초로 8,000m이상의 14봉을 최초로 완 등한 라인홀트 메스너도 동생을 이곳에서 잃었다. 특히 남동벽의 루팔벽은 수직 4,500m의 거대한 직벽으로 등반인들에게 그 위용이 널리 알려져 있다.
 
 안나푸르나 (Annapurna)
  높 이 : 8,091m
위 치 : 네팔 히말라야 중부, 안나푸르나
          산군 최고봉
경, 위도 : 28/36N, 83/49E


안나푸르나는 등반 역사상 최초로 등정된 8,000m봉이다. 1950년 이전까지 안나푸르나는 거의 탐사된 일이 없었는데 모리스 에르조그가 이끄는 프랑스 원정대가 본래 공격목표였던 다울라기리의 등반로를 정찰하기 위해 안나푸르
나로 진입했다가 등반 가능성을 발견하고 목표를 변경, 부적절한 장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등반을 감행, 6월3일에 정상정복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짜릿한 성공과 달리 하산 때 여러 어려운 상황을 겪었는데 당시 흥분제를 과다복용해 자기통제에 실패한 에르조그와 그의 파트너 라슈날이 크레바스에 떨어지며 눈사태에 휩쓸리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로 인해 하산중 많은 대원들이 동상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절단해야만 했다.
 
 가셔브룸 1 (Gasherbrum 1)
  높 이 : 8,068m
위 치 : 파키스탄과 중국의 국경, 카라코람
          발토르 산맥의 가셔브룸 산군
경, 위도 : 35/45N, 76/39E


가셔브룸 1봉은 히든피크 라고도 불리운다. 1861과 1887년에 고드윈 오스틴 소령과 영 허즈밴드 소령에 의해 처음으로 가셔브룸 1봉에 대한 정보가 알려졌으며, K5 라는 측량명도 가지고 있다. 히든피크는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
된 최초의 8,000미터봉이다. 1975년 베이스캠프까지 불과 12명의 포터만 동원한 2인조 원정대 라인홀트 메스너와 패트 하벨러는 8월 10일 가셔브룸 1봉의 북벽을 경유하여 등정했는데 이 등정은 최초로 무산소 등정으로 이루어진 알파인 방식이다. 지금은 가셔브룸 1봉에 대여섯 개 이상의 독립된 루트와 변형루트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 충남산악연맹의 박혁상 대원이 등정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브로드 피크 (Broad peak )
  높 이 : 8,047
위 치 : 파키스탄, 그레이트 카라코람
          발토르 산맥의 브로드 피크 산군
경, 위도 : 35/48N, 76/34E


팔첸 캉리로도 불리우는 브로드 피크는 1892년 콘웨이가 이끄는 영국탐험대의 정찰 때 지금의 이름 을 얻었다. 1957년 슈무크의 지휘 아래 헤르만 불, 슈무크, 디엠 베르거, 빈터슈텔러 4인조가 최초로 정상에 올랐는데 이들은 고소포터
와 산소기구를 사용하지 않은채 장비를 3개의 고소캠프에 운반하기 위해 6,950미터 높이를 여러번 오르내렸다. 브로드피크는 우리나라 산악인이 가장 늦게 오른 봉우리로 1995년에 스페인 바스크 원정대와 합동으로 등반한 엄홍길과 전남 광주의 빛고을 원정대가 몇시간 차이로 정상에 섰다.
 
 시샤팡마 (Sisha pangma)
  높 이 : 8,027m
위 치 : 중국 티베트 자치구 남서부
          시샤팡마 산군
경, 위도 : 28/21N, 85/47E


시샤팡마란 티벳어로 \'일기변화가 극심한 산\'을 의미한다. 8,000m 이상의 고봉 중 유일하게 중국측에 속해 있어서 가장 늦게 등정이 이뤄졌다. 중국은 대륙이 공산화 된후 국가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1961년, 1962년,
1963년 3회의 정찰 끝에 1964년 등정을 시도해 현재의 주접근로인 북면 야북캉가길라 빙하를 넘어 정상정복에 성공했다. 시샤팡마 등반때 가장 어려운 점은 극심한 기상변동에 따른 강풍인데, 10월부터 시작되는 티벳고원의 폭풍은 평야지대 위에 우뚝 선 시샤팡마로 곧장 불어와 바람을 피할 곳 조차 없는 등반가들에게 큰 고통을 준다. 등정의 또 다른 난관은 7,700m 부근에서 2회에 걸쳐 나타나는 경사 50도의 설벽이다. 이벽을 넘어서면 20도 정도의 완만한 경사를 지나 순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가셔브룸 2 (Gasherbrum 2)
  높 이 : 8,035m
위 치 : 파키스탄·중국 국경, 카라코람
          발토르 산맥의 가셔브룸 산군
경, 위도 : 35/43N, 76/41E


K4의 측량 부호가 붙여진 가셔브룸 2봉은 가장 쉬운 8,000미터 봉으로 꼽힌다. 1956년에 1934년의 정찰을 토대로 오스트리아 원정대가 모라벡의 지휘 아래 남서릉을 경유하여 가셔브룸 2봉의 초등에 성공했다. 가셔브룸 2봉에는 5개
의 독립된 루트가 있는데 모두 가셔브룸 계곡에서 출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여름에 성균관 대학교 산악회와 울산 합동대에 의해 초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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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즐기고 사랑하라”

상명대학교에서 ‘등산의 이론과 실제’라는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산악인 엄홍길씨가 수업 중에 강조하는 말이다. 올해 처음으로 개설된 이 과목은 30명 정원 3개 반이 수강 신청 5분 만에 모두 마감되는 인기를 누렸다.

평상시 산을 자주 찾는다는 경제학과 3학년 홍기호군은 엄 교수를 찾아가 정원 외로 들어가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론 교육 때 들었던 히말라야 원정 경험담은 재미도 있을 뿐만 아니라 많은 가르침을 줍니다”며 지금까지의 수업에 만족해 한다.

이론 수업과 함께 야외 수업도 병행하는데 한 학기에 두 번 도봉산과 북한산을 오른다. 기자가 직접 도봉산 산행 수업을 참관했다. 엄씨가 3세 때부터 40세까지 살았던 집터와 중 2때 암벽 등반을 배웠던 두꺼비 바위 등을 소개할 때 그의 눈빛은 산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섬유공예과 4학년인 김정현양과 최문주양은 “오르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정상에 서니 기분이 너무 좋아요. 남자 친구가 생기면 꼭 함께 산에 오르고 싶어요”라며 어느새 산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엄 교수의 산에 대한 사랑이 자신을 키운 도봉산을 통해 제자들에게 오롯이 전달된 듯싶다. 산행 수업에 참가했던 학생의 산행기를 담아 본다.


산행기를 쓴 소비자주거학과 2년 김경복(왼쪽) 양과 국제통상학과 4년 윤지영양, 가운데가 엄홍길 교수


●친구. 잠깐만 쉬었다 가게나(산악인 엄홍길씨와 함께 한 원도봉산 등반기)

참 바쁜 세상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가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달리고 있고 나도 그들 속에 있다.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좀 더 앞서 나가기 위해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지만 이러한 일상이 때론 공허감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가을 바람 시원한 9월의 어느 날.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원도봉산이라는 친구가 나를 초대했다. 든든한 가이드되시는 엄홍길 교수님과 함께 말이다.

산에 들어서자마자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상쾌한 기운이 나를 반긴다. 자연의 기운 덕분이었을까? 뭔지 모를 에너지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발걸음이 힘에 넘친다.

우리의 산행 코스는 대략 망월사를 경유하여 산의 능선을 타고 가는 것이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소풍 가듯 얼마간 갔을까. 우리는 교수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던 곳에 서게 되었다. 세계 최고의 산악인을 품에 안고 키운 도봉산. 그 옛날 이곳에서 뛰놀았던 귀여운 소년이 눈에 보이는 듯하여 도봉산이 더욱 친근하고 정답게 느껴졌다.

더욱 발걸음을 재촉하여 위를 향하니 이제는 제법 숨도 가빠오고 쉬는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이렇게 조금씩 지쳐갈 무렵. 교수님께서는 그동안 당신이 살아오시면서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을 때 일어설 수 있게 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이길 수가 없어.” 이미 어딘가에서 들었을 듯한 그 말씀이 이렇게 감동적으로 들리는 것은 그분이 생생하게 겪으신 삶. 그 자체이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드디어 온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정상에 도착했다. 내 발 아래 펼쳐진 세상이 모두 내 것인 것만 같았다. 이곳도 이렇게 좋은데 모진 역경 다 이겨내고 10배가 넘는 높이의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을 때. 교수님의 마음은 오죽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려가는 길. 힘든 코스는 끝이 났고 내려가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라고 하시며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한 한 동료 분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해 주신 적이 있다. 8000여m의 정상을 정복한 그분은 너무나 기쁘고 흥분된 마음에 눈을 보호하기 위해 쓰고 있던 고글을 벗고 환희를 즐기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설매로 시력을 잃어 죽음에 이르렀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우리 모두의 목표이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자신의 성공을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돌아가는 길 역시 안전하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려가는 것. 이것 또한 우리 삶의 소중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바쁜 일상에 지쳐 있던 내게 산은 언제든 와서 쉬었다 가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를 품에 안은 산은 쉼과 더불어 우리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엄홍길 교수님의 첫사랑. 원도봉산의 매력에 푹 빠진 행복한 하루였다. 상명대학교 소비자주거학과 2년 김경복. 국제통상학과 4년 윤지영


엄홍길씨가 중학교 시절 암벽타기를 배웠던 원도봉산의 두꺼비 바위


●“넌 주저앉을 놈이 아니야” 독려

■엄홍길이 말하는 원도봉산

원도봉산에 오르면 언제나 푸근하고 따뜻합니다. 또 항상 제 자신을 공손하고 겸허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렸을 적에는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놀이터였죠. 세 살때 이쪽으로 이사와 부모님이 매점을 운영하셨거든요.

산속의 바위와 나무는 저에게 장난감이었죠. 산속에서 살았던 셈이죠. 그러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산사람’들이었어요. 중2 때는 두꺼비 바위에서 암벽타기를 배우기 시작했죠. 산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셈이죠.

1998년 안나푸르나 원정 중에 발목을 다쳤을 때는 정말 자포자기였습니다. 쇠못을 네 개나 박는 수술을 받고 나서 의사는 더 이상 산에 오를수 없다고 하고 …. 그때 원도봉산이 저에게 이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넌 주저앉을 놈이 아니다. 지금 너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야. 일어서야지. 넌 해낼 수 있어.”

정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희망의 봉우리로 저를 끌어올렸죠. 이때부터 네 살짜리 딸을 캐리어에 들쳐 업고 원도봉산을 오르기 시작했죠. 힘이 들면 딸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오르기도 하고요. 10개월의 재활 기간 가족과 사랑도 키우고 희망도 키우고. 모두 원도봉산 덕분입니다.

지금은 도시 생활에 지쳐 있거나 고민거리가 생기면 원도봉산을 찾습니다. 산속을 걷다 보면 해답이 저절로 머릿속에 떠오르더군요. 또 남을 배려하지 못했는지. 겸손함을 잃었는지 돌이켜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 원도봉산은 평생의 어머니이자 스승인 것이죠.



■엄홍길 배낭 속엔 특별한 게 있을까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고봉 14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의 배낭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는지 궁금했다. ‘무슨 특별한 것이라도 있을까?’ 살짝 엿보는 마음으로 배낭을 들쳐 보았다. 1.5ℓ 생수 한 통. 방석 매트리스. 기능성 반팔 티셔츠. 보온을 위한 파일 자켓. 윈드 자켓이 들어 있었다.

1.5ℓ나 되는 생수는 실제로는 물이 다 떨어진 학생들을 위한 배려 때문이다. 반팔 티셔츠는 땀을 많이 흘리는 탓에 갈아입을 옷으로 넣어 둔다고 한다. 먹을 것으로는 김밥 한 줄과 오이. 그리고 산에 오르다 사과를 한바구니 사서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방현 기자 [ataraxia@ilgan.co.kr]

원   
   . . ■ 주소 :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 금단산은 괴산군 청천면과 보은군 산외면과 경계를 이루는 괴산군 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우거진 송림과 바위지대가 잘어울러져 있고 용대천 계곡 남쪽에 위치하여 정상의 조망이 좋다. 금단산에는 샘이 없어 물을 준비해야 한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나무숲이 가리고 좁아 볼품이 없지만 30미터 정도 북쪽에 있는 헬기장에 서면 북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가 가히 장관을 이룬다. 가까이 조봉산에서부터 동쪽의 낙영산으로 이어지는 암릉과 도명산, 군자산, 백악산, 대야산, 조항산 이 구름에 얹힌양 정겹고 발밑으로 흐르는 용대천의 맑은 물소리가 귓전에 새롭다. 사담(沙潭)마을엔 모래나 연못이 없지만 이름을 모래사(沙)자와 연못담(潭)자를 써서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마주보고 있는 낙영산이, 용이 마을을 공격할 듯이 내려다 보고 있는 형상이라 공림사 입구에 두꺼비 바위를 만들어 먹이를 마련해 주고 그래도 못믿어 뱀(용)이 싫어하는 모래와 연못을 마을 이름에 넣어 지었다는 옛부터 전하여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청소부근에는 행풍석(杏風石)이라고 쓴 바위 하나가 있는데 이는 조선 세조대왕께서 속리산에 머물 때 이 길을 지나다 인근 대방네에서 하룻밤을 묵으면서 사담리에 만개한 살구꽃 향기에 취하여 잠을 못이루고 돌에 행풍석이라 새기고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 온다. (출처 : 충북관광(http://www.cbtour.net/)에서 발췌 편집) 원   
   8월 20일 정기산행 코스는 ▶A코스: 충북영동 도마령(해발800m)-각호산(▲1,176m)-십자로 갈림길-민주지산(▲1,241.7m)-쪽새골-삼거리-황룡사-물한계곡 주차장(식당) (약5시간 소요, 8.3km)   (A코스는 긴팔, 긴바지 복장을 권장합니다.) ▶B코스: 물한리-황룡사-낙엽송 삼림욕-삼거리-옥소폭포(반환점) 입니다. 위의 등산지도에서 참고하세요.... 원   
   조선 태종 때인 1414년. 조선을 8도로 나눌 때 충청, 경상, 전라 삼남의 분기점이 되면서 얻은 이름이 삼도봉이다. 백두대간 본줄기에 속하는 이 삼도봉에서 석기봉(1,200m), 민주지산(1,242m), 각호산(1,176m)로 이어지는 늠름한 산줄기가 뻗어 간다. 민주지산은 충청도쪽에서는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동국여지승람>에는 민주지산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白雲山)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옮긴이 주 : 1861년 고산자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도 \'백운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의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은 왜정시대에 지도를 제작할 때 민두름산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듯하다. (출처 : 조선일보 월간산 발행 \"백두대간 종주산행\" p.44 인용) 원   
   . . (43) 살아있는 작은 정글, 물한계곡 해발 1000m가 훌쩍 넘는 삼도봉, 석기봉, 각호산, 민주지산에 둘러싸여 있는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계곡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 계곡을 덮고 있는 숲엔 꾀꼬리, 노랑할미새 등 수십 종의 새들이, 물속엔 쉬리, 버들치, 동사리 등이 어우러져 산다. 황룡사에서부터 용소(일명 무지개소)에 이르는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물한리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은 옥소폭포·의용골폭포·음주암폭포·장군바위 등 폭포와 숲 등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정글을 연상케 한다. ■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황간나들목→49번 도로→매곡→상촌면 방향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상촌초등학교→물한계곡 이정표 ■ 여행정보: 진수암민박집(043-744-1350), 밤골민박집(043-745-6333), 호도나무민박집(043-744-3675) 등이 있다. 선희식당(043-745-9450)의 어죽(4000원)이 유명하다. 또 황간읍의 안성식당(043-742-4203)의 올갱이국(5000원)도 별미. 출처 : 상큼한 재충전 맛봐…추천 산 30곳 [서울신문 2006-07-13 09:00]   원   
http://www.koreasanha.net/mountmap/20040315101730_jpg_view.htm  
  • 링크#1 : 금단산 등산지도
  • 링크#2 : 금단산 개념도


    제207차 정기산행 금단산(金丹山) 답사를 다녀와서...



    정리 : 심원식(26회)




      
      
      지난주 금요일,

      7월 제207차 정기산행인 金丹山( 766 m )을

      사전 답사하였습니다.

      24회 홍성칠 선배님과

      26회 원건희, 신용경, 심원식

      이렇게 4명이 답사팀으로

      충북 괴산군과 보은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금단산을 다녀 왔습니다.



      
      
      산행의 시작은 신월초등학교(분교)가 있는

      오얏마을에서 시작하여

      금단산 정상과 덕가산 북봉을 거쳐,

      千年古刹 空林寺 입구 맞은편에 있는

      沙潭마을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택하였으며,

      전체 산행시간은 4시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처음에 등산 안내판을 보고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물탱크옆 우측으로

      잡목이 많은 소로길로 30분 정도 올라가면

      산불 감시초소가 나오는데 이곳까지는

      경사가 많이 가파르니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올라가시길 바랍니다. 이곳 감시초소에서..

      금단산 정상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돌 하나 없는 능선 길로 우거진 송림터널 사이로

      낙엽송밭을 밟고 올라가는 편안한 코스입니다.



      
      
      금단산 746m를 가리키는 입석이 있는

      헬기장에 서면 북쪽에서 동쪽방향으로

      조봉산(680m)에서부터 낙영산(684m)으로

      이어지는 암릉과 도명산(632m), 백악산(858m)의

      아름답고 시원한 경치를 보실 수 있습니다.





      
      
      766m 정상을 지나 경사길을 따라

      30여분 정도 내려오면 鞍部 사거리입니다.

      활목고개 2.8km, 상신리 4.0km, 신월리 4.9km,

      내려온 금단산이 0.4km임을 표시한 팻말이

      임도의 끝에 서있습니다.




      
      
      상신리쪽 방향으로 덕가산 북봉을 올라서

      다시 헬기장을 거쳐 종착지인 사담마을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소요되며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니 하산길은

      천천히 내려 오시길 바라며,

      산행하는 동안 샘터나 溪流가 없으니

      물은 충분히 각자 준비하시고 반바지 보다는

      긴 등산바지를 입는 것이 좋겠습니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무더워지기 시작한

      이번 답사 산행의 맛이

      더욱 깊고 여유로웠던 것은

      계속 낙엽송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햇볕을 차단시켜준

      울창한 숲속의 산행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또한, 沙潭里, 杏風石, 空林寺와 落影山 등

      역사와 전설을 산행과 같이 접할 수 있어

      더욱 뜻 깊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7월 정기산행에서 많은 선후배님들과 함께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뵙겠습니다.
      이번 답사산행을 보내주신 김윤종 회장님과 박충남 대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1. 산행 코스( 산행거리 7km, 산행시간 4시간 )
      오얏마을 -> 산불감시초소 -> 학습안내판-> 헬기장( 746m ) -> 금단산 정상( 766m )
      -> 안부사거리 -> 덕가산북봉 -> 헬기장 -> 사담리(식당)

      2. 식 당
      사담식당( 043-833-4679 ), 2005년 5월 백악산 정기산행 식당입니다.


  • 원   
       어느 산악회의 제천 동산 탐방기 (사진을 클릭하면 크게보실 수 있습니다) ▲ 맞은편에 보이는 산이 월악산이란다. ▲ 왼쪽 바위는 무쏘(MUSSO) 바위라는데... (출처 : 네이버 블로그 http://blog.naver.com/okm6613 ) 원   
       그림 1 : 상계역(4호선) 1번출구에서 재현중학교 가는 길 그림 2 : 재현중학교에서 정암사 입구로 사각정자 바로 위에서 오른쪽 등산로(나무다리 건넘)로 가는 길 원   
      
    불수도북 도전 가이드

    대개 18시간 완주 목표 속도와 종료지점에 따라 시간차 커
    해 길고 기온 적당한 봄가을이 적기…보온의류와 간식 충분히 챙기도록

    ▲ 수락산 코끼리바위 험로.
    불수도북, 또는 불수사도북 종주는 분명 강한 체력과 끈질긴 인내심을 요구한다. 종료지점에 따라 도상거리 40km 안팎, 실거리 50km에 이르는 긴 산행이고, 의정부시 장암동이나 강북구 우이동은 아예 바닥까지 내려섰다가 다시 올라서야 하는 데다 도중에 탈출로가 많아 포기하라는 유혹도 많다. 그런 면 때문에 지리산 주능선이나 설악산 서북릉보다 오히려 더 힘들다고 평하는 경험자들이 많다.

    산행은 거의 다 불암산에서 시작, 북한산에서 끝을 맺는다. 아무래도 가장 높고 가장 긴 북한산 종주로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불암산은 불암동, 상계동, 중계동 등 기점이 여럿 있으나, 교통편을 고려할 때 상계역을 기점으로 잡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상계역 전철역 1번 출구로 빠져나가 상가를 끼고 수락산 방향(왼쪽)으로 200m쯤 걸으면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횡단보도를 건너면 ‘상계제일중학교, 재현중고’ 안내판이 보이고, 이 방향을 따라 청암아파트를 왼쪽에 두고 걸으면 불암산 공원사무소 앞으로 올라선다. 부근의 샘에서 수락산행을 마칠 때까지 마실 식수를 준비한다.

    도봉산과 북한산은 우이령으로 이어지지만 우이암~영봉 구간은 군사보호구역과 휴식년제구간으로 입산이 금지돼 있다. 따라서 우이암 남릉을 따르다 우이동을 거쳐 도선사주차장~하루재~위문길을 따라야 한다.

    북한산에서 하산할 경우 대남문에서 구기매표소로 내려서는 이들도 많고, 비봉~향로봉 능선을 거쳐 불광동으로 내려서거나 탕춘대능선을 따라 상명대학까지 뽑는 이들도 있다.

    완주 시간은 보행속도에 따라 차이가 크다. 산행시간은 불암산 2시간, 수락산 4시간, 도봉산 5시간, 북한산 5~6시간에 장암동과 우이동에서 식사 휴식시간을 더해주면 적당하지만, 10시간에 마치는 산악마라토너 수준의 준족이 있는가 하면, 20시간 이상 걸리는 등산인도 많다.

    취재팀의 경우 장암동과 우이동에서 2시간 안팎씩 쉬고, 또 간간이 촬영하느라 시간이 걸렸고, 일반적으로 위문에서 그냥 지나치는 백운대에 올라 조망을 즐기다 보니 하루 24시간이 꼬박 걸렸다. 대개는 18시간을 잡고 도전한다. 마라톤 풀코스로 치면 제한시간인 5시간쯤으로 비교하면 된다. 따라서 출발 시각은 각자 능력에 따라 잡도록 한다. 자신과의 싸움이지,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아니기 때문이다.

    글 한필석 기자
    사진 정정현 차장·김승완 기자

    1. 요주의 구간

    가장 자신 없는 구간은 환할 때 통과하는 게 바람직하다. 취재팀의 경우 수락산 산길에 자신이 없어, 불암산~수락산 구간을 낮 시간대에 끝내고, 자신 있다 싶은 도봉산 주능선 구간을 한밤중에 시도했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은 경험 많은 이들도 헷갈리게 했다. 특히 칼바위~오봉 갈림목 암릉 구간에서는 신경이 많이 쓰였다. 잘못 바윗길로 들어섰다가 오도가도 못하는 황당한 경우를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산의 경우, 산길이 워낙 뚜렷한 데다 환한 대낮에 걸어 특별히 헤맬 일이 없었다. 그렇지만 위문~용암문 구간은 험한 바위 구간을 통과하고, 산길이 거칠어 한밤중에는 조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밤중에 북한산에서 종주산행을 끝마칠 경우 대남문에서 구기매표소로 내려서는 게 안전할 듯싶다.
    도봉산과 북한산을 연결짓기 위해 내려서는 우이동 일원은 빤하지만, 수락산과 도봉산을 잇는 장암동 구간은 수락산 마니아가 아니라면 아무래도 낯설 수밖에 없다. 수락산 정상에서 홈통바위를 내려선 다음 널찍한 능선 길을 따르노라면 도정봉을 지나면서 산길은 왼쪽으로 휜다. 이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서면 장암동 일원이 빤히 바라보이기 때문에 동막골로 내려서는 데는 헷갈릴 염려가 거의 없다. 홈통바위를 한밤중 통과할때는 우회로를 이용한다.
    산불감시초소로 내려선 다음에는 의정부시 외곽도로 아래 터널을 빠져나간 이후 개울가로 이어진 마을길을 따르면 장암동 아파트단지 내 4차선 도로로 다가선다.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중랑천을 가로질러 의정부~도봉동 도로에 닿고, 도로를 건너면 회룡역이다.
    회룡역 매표소 지하도를 빠져나간 다음 묵밭 가로 나 있는 길을 따르면 회룡역 뒤편의 찻길이 나온다. 여기서 왼쪽 방향으로 50m쯤 걸은 다음 개나리아파트를 오른쪽에 끼고 걷든지, 또는 오른쪽으로 50m쯤 가다 도로 건너편 신도아파트 정문 오른쪽 길을 따라도 회룡매표소 앞으로 이어진다. 수락산에서 회룡매표소까지는 40분 이상 걸린다.

    2. 출발시각 잡기

    출발시각은 대개 오후 8시 이후로 잡는다. 이튿날 오후 산행을 마치려 하는 등산인이 많기 때문이다. 20시간 이내에 산행을 마칠 계획이면 오후 8시를 출발시각으로 잡고, 18시간 이내라면 오후 10시 이후도 괜찮을 듯싶다. 이 경우 새벽 참은 장암동 일원의 24시간 음식점을 이용하고, 아침 겸 점심은 우이동 도선사 입구 식당가에서 해결한다.
    장암동과 회룡역 부근 상가 일원에 감자탕집 같은 24시간 음식점들이 여럿 있다. 우이동 도선사 들머리에도 24시간 영업하는 음식점이 여럿 있다. 식수는 산행 중 구하기 쉽지 않으니 식당이나 식당 주변의 편의점에서 생수를 구입하도록 한다.

    3. 반드시 챙겨야할 것들

    랜턴은 당연히 필수이고, 간식은 충분히 준비하도록 한다. 장암동과 우이동에서 배불리 먹으면 더 이상 먹거리가 필요치 않을 것 같지만, 잠 안 자고 걷기에 체력 소모가 많고, 그에 따라 칼로리 보충을 위한 간식을 넉넉히 준비해야 한다. 초콜릿이나 사탕처럼 효과가 바로 나타나는 간식이 좋다. 고형의 에너지바, 달리기용 튜브식 에너지 보충원도 권할 만하다.

    4. 시기 선택

    종주시기는 한여름은 피하도록 한다. 밤잠 안 자고 걸은 다음 한낮에 걷다 보면 아무래도 컨디션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한낮에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듯해도 한밤중에는 서늘할 정도로 기온이 떨어진다. 따라서 가벼운 덧옷이나 윈드재킷은 꼭 휴대토록 한다.
    서울 근교 산은 대개 암산이어서 눈이 쌓이거나 얼음이 어는 한겨울은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



    원   
      
    [도전! 불수도북] \"좋잖아요,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수 있어서\"

    아마추어들의 최고난도 도전 코스
    불암산~수락산~도봉산~북한산 당일종주 24시간 걸려

    ▲ 북한산 백운대에서 바라본 한강 이북의 서울. 짙푸른 숲 우거진 산릉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고을이다. 무박2일의 산행 뒤에는 이토록 아름다운 풍광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정신 있는 거예요, 밤새 걷는다는 게-.”

    산을 오르는 게 직업이긴 하지만, 밤잠 안 자고 걷는다는 얘기에 아내가 혀를 찬다.

    불수도북이란, 불암산(佛岩山·508m)과 수락산(水落山·637.7m)을 이어 종주하고, 산 아래로 내려섰다가 의정부시 장암동 아파트단지를 가로질러 사패산(賜牌山·552m) 회룡골로 접어든 다음 주능선에 올라 도봉산(道峰山·740m)을 종주하고, 또다시 우이동으로 내려섰다가 백운대에 올라선 뒤 북한산 주능선을 따라 불광역 부근까지 잇는 산행을 말한다.

    불암산~수락산, 사패산~도봉산, 북한산 종주만도 각각 제법 뻐근한 산행인데, 도상거리 약 40km, 실거리 50km는 족히 되는 거리를, 그것도 밤잠 안 자고 한꺼번에 이어 걷는다니 산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행동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5월6일 정오, 약속장소인 지하철 4호선 상계역 앞에 도착했을 때 일기예보와 달리 어제부터 내린 비가 그치지 않고 오히려 빗방울이 더욱 굵어져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자학증세예요, 그것도 아주 심한 자학증-”

    상계역 부근 순대국집에 모인 거인산악회 이구 대장 일행의 표정 역시 궂은 날씨만큼이나 어둡다. 그렇다고 일단 뽑은 칼 피도 묻혀 보지 않고 칼집에 되넣을 수는 없는 일. 오후 1시경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는 불암산 기슭으로 접어든다.

    ▲ 도봉산 주능선에서 맞은 서울 야경. 새벽 2시가 넘어서면서 불빛이 기운을 잃어갔다.

    “와! 저게 어디예요? 강원도 산골 같은데요.”

    이틀째 내리는 비는 일행의 말수도 줄여놓는다. 칙칙한 날씨에 빗방울까지 흩날리는데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런데 능선에 올라 정상으로 향하는 사이 구름안개가 걷히면서 산아래 세상이 바라보인다. 남양주시 별내면 일원은 초록 기운이 넘친다. 어느 순간 반대편 노원구와 도봉구도 모습을 드러낸다.

    고막을 찢는 듯한 자동차 소음과 어깨를 부딪치면 칼눈을 뜨고 째려보는 거칠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건만 지금 예서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성냥갑만한 크기의 아파트와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찬 저 아래 고을은 북한산과 도봉산, 불암산과 수락산에 둘러싸인 아름답고 은밀한 소인국이었고, 우리들은 소인국을 내려다보며 산릉을 타는 넉넉한 거인들이었다. 한편으론, 체스판 위에 플라스틱 토막을 빼곡히 세워놓은 듯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저 빤한 체스판, 도미노판 위에서 긴장하며 살고 있는 것일 게다. 마음을 비워야 세상이 보이나 보다. 비 오는 날이 아니면 맛보기 힘든 풍광이자 감흥이었다.

    첫번째 산 ‘등정’. 불암산 정상에 오른 것은 불암산 공원관리사무소를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난 오후 2시10분. 이미 하산길에 들어선 몇몇 등산인은 “이런 날은 바윗길을 조심해야 한다”며 지나친다. 이제 불암산 정상. 수락산을 내려서고 도봉산을 넘고 북한산 주능선을 따를 때는 수락산과 불암산이 길동무처럼 옆에 서 있어야 하고, 그러다 어느 순간 두 산을 등져야 우리의 목적지인 불광동으로 내려선다.

    “심한 자학증이에요, 자학증-.”

    ▲ 안개비에 흠뻑 젖었지만, 여유를 잃지 않는 종주대원들.

    4개 산 종주산행 얘기를 듣곤 당연히 이틀에 나누어 걷는 것으로 생각했다가 무박 2일 산행이란 대답에 찌뿌드드한 표정을 지었던 정정현 기자는 지금도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를 자학증 환자라 못 박는다. 반면 올해 칠순인 거인산악회 박창서 회장은 오히려 함께 종주산행을 계속하지 못하는 게 아쉬운 모습이다. 박 회장은 “불수도북 산행을 마친 이들은 대부분 발바닥이 아파 혼났다”고 말한다며 은근히 겁을 주고 하산한다.

    걷힐 듯하던 구름안개는 정상을 내려서면서 오히려 더욱 짙어진다. 분명 7, 8년 전에 비해 산길이 넓어지고 뚜렷해졌건만 구름안개가 방향감각을 잃게 한다. 그나마 덕릉고개는 확포장 공사 후 동물 이동용 다리가 만들어져 ‘자동차 눈치’ 보지 않고 쉽게 가로지를 수 있었다(14:10). 

    완경사 능선을 따르다 도솔봉(540m) 바위봉을 우회하고, 잠시 휴식. 오늘 강릉에서 열린 고교 축구대회에서 아들이 선수로 뛰고 있는 축구부가 승리했다는 전화를 막 받은 박수신씨(거인산악회 정맥 등반대장)는 배낭 안에서 먹을 것을 이것저것 꺼내놓으며 내일 열릴 아들 축구시합 때문에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며, 그가 경험한 불수도북 종주를 지리산 종주보다 훨씬 힘든 산행이라 일러준다.

    ‘수락계곡 2.4km’ 갈림목을 지나면서 수락산다운 험로가 시작된다. 사면 우회로를 따르려다 바윗길을 따르니 코끼리바위가 우뚝 솟아 있다. 와이어로프를 잡고 바위홈을 타고 내려선다. 이제 안개가 시야뿐 아니라 방향감각과 오감까지 모두 앗아가 버렸다.
    오후 5시27분 수락산 정상 창바위. ‘물이 떨어지는 산’이라는 수락산 지명 유래 설명판이 서 있다. 일기예보에 맞춰 오후 들면서 구름안개가 걷히고 파란 하늘이 드러나면서 뭔가 그럴 듯한 조망이 펼쳐지기를 기대했건만 안개비가 모든 희망을 날려버렸다.

    ▲ 북한산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백운대 등로. 팔당댐으로 이어지는 한강 물줄기와 그 뒤로 용문산까지 바라보인다.

    “아주머니들은 돌아가세요~.”

    정상을 지나자 수락산 최난 구간인 홈통바위(일명 기차바위). 30여m 길이의 급경사 슬랩이다. 앞장선 이구 대장은 사고를 우려해 세 명의 여성 등산인은 우회로를 따르라고 권한다. 굵은 동아줄은 손을 밑으로 내릴 때마다 흙탕물을 짜낸다. 가슴팍으로 바지로 떨어지고, 물먹은 동아줄은 한겨울 눈에 얼어붙은 로프를 잡는 것이나 다름없다.

    도정봉을 지나 내리막 능선에 접어들면서 동부간선도로와 이어지는 의정부 외곽도로가 내려다보인다. 아파트 건물들은 하나 하나 불을 켜고, 장난감 같은 차들은 해거름을 맞아 조명등을 켠 채 뱀처럼 구불구불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지금 의정부시는 숲 짙은 산릉에 둘러싸인 산골마을이다. 그 마을에 호롱불이 켜지면서 길손의 방향을 잡아주고 있는 것이다.

    “아니 벌써 몸을 푸는 거야?”

    오후 7시를 조금 넘어 의정부시 장암동 동막골 등산로 입구의 화기물보관소로 내려서자마자 양효용씨가 스트레칭을 한다. 새 산에 대비해 뭉친 근육을 풀어주고 컨디션 조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인산악회 회원들은 대부분 1대간 9정맥을 완주해냈거나 피날레가 얼마 남지 않은 준족의 산꾼들이다. 그리고 양효용씨는 3시간40분, 윤해경씨는 4시간, 정정현 기자는 4시간30분 이내에 42.195km의 마라톤 코스를 완주해낸 건각들이다. 그렇지만 빗방울 흩날리고, 안개비 오락가락하는 날씨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이들에게 많은 체력을 빼앗아갔다. 낮은 기온이 체력소모를 가중시킨 것이다.

    상황판단력 빼앗아 버린 칠흑 같은 어둠

    산 위에서는 장암동 일원이 호젓한 산골처럼 느껴졌건만 막상 내려서니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이 들만큼 혼잡하다. 마을길을 빠져나가고, 넓은 찻길을 따라 회룡역으로 향하다 반듯한 감자탕집으로 들어선다. 불수도북 종주객들은 한밤중이건 새벽녘이건 이들 24시간 영업하는 음식점에서 다음 산에 대비해 배도 불리고, 피로도 푼다. 우리들도 이곳에서 재충전한 다음 박수신씨, 서영구-김경희씨 부부, 그리고 이구 대장 아내 조유선씨와 헤어졌다. 최후까지 남을 전사는 이구 대장, 김헌영씨(청량산악회 총무), 황원선, 양효용, 윤해경씨 등 7명-. 이들은 회룡역 지하터널을 빠져나가고 아파트단지를 가로질러 어둠침침한 산기슭을 파고들었다(21:30).

    ▲ 수락산행을 마치고 터널을 통해 의정부시외곽도로를 가로지르고 있다.

    덧옷을 입어야할 만큼 기온이 떨어졌다. 바람도 제법 불어댄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저녁밥 먹는 사이 안개가 싹 걷혀 능선이 바라보인다는 점이다. 잠시 산을 가로막은 고가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차량 행렬이 괘씸하게 느껴졌으나, 회룡매표소에 이어 음식점을 지나치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와~ 저기가 어디예요?”

    회룡사를 지나 골짜기 안으로 들어서자 등뒤로 의정부시 야경이 바라보인다. 산골은 집집마다 불을 켜놓고, 축석령 고갯길은 비단뱀이 조명 받으며 승천하는 분위기다. 제법 먼 거리인데도 손을 뻗으면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회룡골은 송추 물난리 때 많이 망가졌다. 때문에 거칠고 무너진 산길을 연결하느라 곳곳에 철다리가 놓여 있다. 이 모든 상처는 한밤중의 어둠이 감추고 있었다.

    마지막 철다리가 끝나고, 물소리가 끊긴 다음 된비알을 올려치자 바람이 몰아친다. 송추골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이제 일산 일원의 야경도 바라보인다. 시커먼 바다 끄트머리의 항구처럼 느껴진다. 턱을 하나 올라서자 천지창조의 장엄함이 기다리고 있다. 먹구름이 낮게 깔리고, 산봉과 산릉은 먹구름을 찌를 듯 솟구쳐 있다. 아니, 서로 합쳐질 듯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좌우로 도심의 야경이 휘황찬란하게 반짝인다. 서울 야경에 실루엣 진 산봉은 바로 수묵화다.

    우회로를 따르다 암봉에 올라서자 이제 서울시내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신선대와 만장봉과 자운봉이 검고 묵직하게 솟아 있다. 우리는 저 검은 물체 속으로 뛰어들었다.

    0시30분 포대능선 들머리. 메모지에 두 자리수로 적던 시각이 한 자리수로 떨어졌다. 하루가 넘어가고 새 날이 시작되었다. 앞장선 김헌영씨가 자연스레 우회로로 접어든다. 이구 대장도 “종주객들이 대개 우회로를 따르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비 내린 직후 어둠 속에  포대 Y계곡길로 접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회로를 권한다.

    우회로를 가로지르자 신선대 앞. 자운봉과 그 오른쪽 암봉들이 낙락장송을 인 채 신비스런 분위기다. 이제 잠이 쏟아진다. 다리도 무겁고, 춥고, 정신도 오락가락한다. 이러한 증세를 재미삼아 밤길을 걷는다면 분명 자학증 환자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이런 증상이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자학증 환자는 아닌가 보다.

    와이어로프를 잡고 내려서다 칼바위 기점을 지나 능선길을 따르는 사이 불안하다. 예서 자칫 바윗길로 잘못 접어들면 어둠 속에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옛날 깡통집이 있던 잘룩이(우이암 1,860m, 만장봉 320m, 도봉매표소 3,250m)를 지나 암봉을 올라섰다가 오른쪽 사면길을 따른다. 그런데-.


    ▲ 암릉 연속인 도봉산 주능선. 우회로가 잘 나 있다.
    “양효용씨~, 양효용씨~.”

    빤하다 싶어 우회도를 따라 내리닫던 양효용씨가 차단용 로프가 설치된 지점에서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샛길로 빠지고 만 것. 그 바람에 양씨는 10여 분 헛걸음을 해야 했다.

    새벽 2시 오봉 능선 갈림목(우이암 1,420m, 만장봉 760m). 이제부터는 눈 감고도 걸을 수 있는 능선길이다 싶었는데, 갈림목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망설이며 길을 확인한 다음에 제 길을 찾는다. 어둠은 모든 기억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렸다.

    이제 삼각산이 보인다. 서울 야경도 자못 열기가 식어들었다. 먹구름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뭉게구름이 떠다니고 밤하늘의 별들이 그믐밤 하늘을 수놓는다. 이제 우이암 옆으로 우이동이 산골마을처럼 아늑하게 바라보인다.

    새벽 2시 반, 이구 대장과 김헌영씨가 배낭에서 먹거리를 끄집어내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이 이것저것 집어먹는다. 허기질 만도 했다. 오후 8시경 저녁밥 먹은 다음 물 몇 모금 마시면서 계속 걷고 있으니-. 우이암을 400m쯤 앞두고 데크길로 접어든다. 중간중간 만들어놓은 조망대 위에 올라서 우리가 밟고 지나온 도봉산 주능선을 바라보며 숨도 가다듬는다.

    “쇠귀가 아니라 소 혀처럼 생겼는데요.”

    말없이 걷던 윤해경씨는 어둠을 뚫고 솟아오른 우이암의 기묘한 형상에 잠시 잠이 달아났나 보다. 하지만 곧 또다시 말을 잃는다.

    “야경도 좋고, 날도 좋고, 오늘 같은 날을 언제 만나겠어요”

    6일 오전 4시30분, 우이동 해장국집. 보통 5시간쯤 잡는다는 도봉산은 7시간 걸린 셈이다. 도중에 길을 헤매는 바람에 한 시간쯤 지체되기는 했지만, 준족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기록이다. 모두들 지쳤나 보다. 정정현 기자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벽에 기대 눈을 감고, 황원선씨도 드러눕는다. 윤해경씨는 이제 아예 입을 닫아 버렸다. 두주불사형 이구 대장도 소주 한 잔으로 해장술을 끝낸다.

    잠시 고민. 이구 대장과 김헌영씨는 우이동~도선사 주차장 구간은 차를 타고 올라간다지만 뭔가 찜찜하다. 하지만, 혼자 우길 수는 없는 일. 결국 일행 모두의 의견에 따라 새벽 5시55분 도선사행 첫 셔틀버스를 타고 1.5km 콘크리트 구간을 해결한다.

    새벽 산은 신록이 꿈틀거리며 생동감 넘친다. 바위는 벌겋게 달아오르며 새날을 맞는다. 우리들도 아침밥 먹고 새날의 기운을 얻었는지 어둠 속에서보다 발이 가볍다. 산이 이렇게 맑다는 사실을 오늘 새삼 깨닫는다. 하늘은 파랗고, 숲은 연둣빛으로 반짝인다. 계곡물도 콸콸 소리내며 흐른다.

    하루재를 넘고 바윗길 따라 백운산장으로 올라서는 사이 등뒤로 수락산이 솟구치고, 그 뒤로 천마산~철마산 능선이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다. 인수봉 알바위는 보석처럼 반짝인다. 백운산장 앞마당에는 이런 모습에 들뜬 바윗꾼들이 벌써부터 장비를 챙기고 배낭을 둘러메고 있다.

    오를수록 산봉은 점점 더 솟구치고 더 길게 뻗어나간다. 한북정맥 국망봉~광덕산 줄기 뒤로 명지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오른쪽으로 용문산 일원의 산봉들이 꿈틀거린다. 이렇게 지금 대자연의 장엄한 풍광을 보려고 안개비를 가르고, 어둠을 뚫고, 여명을 등지며 백운대로 걸어 오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힘이 솟는다. 우리들이 산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분명 산이, 대자연이 새로운 힘과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리라.

    ▲ 수락산 정상 창바위.
    백운대 정상에 오르는 이들의 얼굴이 모두들 맑고 기쁨에 넘쳐 있다. 한 발 한 발 오를수록 점점 더 많은 산봉이 솟구친다. 인수봉 뒤로 오봉에서 자운봉, 만장대로 이어지는 연둣빛 도봉 주능선의 바위봉들은 보석처럼 반짝인다. 이제 멀리 임진강 예성강 하구도 내려다보이고, 이북의 산봉들도 보인다. 이 이상 산정에서 느낄 수 있는 기쁨이 또 어디 있겠는가.

    “먼저들 가세요….”

    다리가 꼬이고, 몸이 휘청거린다. 쏟아지는 잠을 어떻게 막을 방법이 없다. 일행들에게 뒤쫓아간다고 양해를 구한 뒤 길가 바위에 기대 눈을 붙인다. 깜빡 했다 놀라서 달려간다. 기껏 해야 2분이나 눈을 감았을까, 그런데도 살 만하다.

    새벽부터 서둘러 산을 오른 석상명씨가 백운산장에서 합류하고, 용암문에서는 윤대오씨와 합친다. 오전 8시면 대남문에 도착하리라는 계획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6시40분에 올라왔건만 정작 일행을 만난 것은 오전 10시가 넘어서였다. 어쨌든 윤대오씨가 짊어지고 올라온 캔맥주가 그토록 시원할 줄이야.

    “날 잡아 먹어라, 잡아먹어….”

    1시간이면 하산할 수 있는 구기매표소로 내려가자는 의견을 일축하고, 계획대로 불광매표소로 가자는 말에 황원선씨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이제 마지막 스퍼트다. 대남문은 토요 휴일을 맞아 올라온 등산인들로 북새통이다. 이제 안개비 속의 고요함도, 이른 새벽의 적막함도 사라져 버렸다. 소요와 흙먼지, 한낮의 따가운 햇살만 느껴질 따름이다. 시커먼 까마귀파, 파랗고 빨간 알록달록파 등 등산인들은 대부분 대남문이나 백운대 방향으로 진행, 좁은 길을 앞두면 한쪽으로 비켜설 수밖에 없다. 이제 어깨를 부딪기는 인간세계로 내려가는 길인가 보다.

    ▲ 수락산 최난구간 홈통바위.
    향로봉을 넘어서자 드디어 우리가 내려설 불광동이 내려다보인다. 햇살은 더욱 뜨거워진다. 그 햇살에 질린 탓인지 말을 건네는 이가 한 사람도 없다. 단지, 한 발 한 발 걸어 내려설 뿐이다. 만 24시간이 다가온다. 그 시간을 넘길 수는 없다는 생각에 걸음이 빨라진다. 12시55분, 마지막 체력단련장. 급히 바위계단길을 내려선다. 오후 1시 드디어 불광매표소다. 불광사 앞 화단에는 벌나비가 오후 햇살을 즐기며 하늘거리고 있었다.

    이 날 3호선 전철을 탄 일행 7명은 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수서역에 닿을 때까지 근 1시간을 곯아떨어진 채 맞은편 승객들에게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이틀간 우리 모두는 자학증 환자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날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소인국 같은 서울과, 밤하늘을 수놓은 의정부시와 서울 강북의 야경, 그리고 명지산과 용문산뿐 아니라 임진강과 예성강 하구가 서울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지낼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인가 윤해경씨는 막걸리 뒤풀이에서 졸다가 “할 만했냐?”는 질문에 “좋잖아요, 야경도 좋고, 오늘처럼 맑은 날을 또다시 어찌 만나겠어요. 이렇게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을 수 있는 산행이 또 어디 있겠어요”라 대답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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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마주하고 있는백운산 요즘 한창 매화 축제가 열리고 있는 백운산을 내년 3월 산행지로 추천합니다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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